6월 토론회 후기로 참고할 만한 글

사회와노동 2009.06.22 18:45 조회 수 : 684

사회진보연대 / 사회화와노동

노동자운동의 혼란과 동요를 넘어서자
민중생존권 쟁취, 민주주의 쟁취를 위한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재정립하자!

                                                                                                                                                 정책위원회


화물연대 총파업이 마무리되었다. 특수고용자의 노동기본권이라는 정치쟁점에 대해 주의를 환기했다는 점에서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전면파업’이라는 노동조합운동 최대의 무기를 들고도 노사합의서에 ‘화물연대’라는 조직적 실체를 명시할 수 없었다. 우리는 이 운동이 다시 한번 노동조합운동의 각성을 촉구하고, 5월 30일 범국민 대회의 촉매제가 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하지만 전투적인 민주노조 운동의 한 축이 이렇게 주저앉아버린 이 비극적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민중운동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또한 지난 5-6월 민주노조운동의 목표설정과 진행 양상이 어떠했는지를 자문할 수밖에 없게 한다. 역량의 부족.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역량의 문제를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는 노동운동의 끊임없는 혼란과 동요다.


노무현의 사망과 민중운동의 혼란

지난 5월 23일 노무현 사망 이후 노동자운동은 5-6월 투쟁 계획을 일부 재조정한다. 5월 말 건설노조의 파업, 6월 투쟁을 앞둔 서울지역 노동자 총력투쟁대회, 그리고 박종태 열사 투쟁과 화물연대 총파업 등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일정이 조정되거나 투쟁수위가 조정된 것이다. 5월 30일 이전에 투쟁을 조직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보면 노무현의 죽음은 오히려 투쟁의 일정과 수위를 조정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한 셈이다.

박종태 열사대책위가 보신각 앞에서 박종태 열사 촛불 투쟁을 개최하지 못하고 대한문 앞 노무현 추모 촛불 장소로 이동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매일 촛불을 열 수 없는 상황에서 대한문 앞 촛불 진행은 실용적 선택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은커녕 아직 장례도 치루지 못한 용산 범대위의 5월 30일 시청 앞 범국민대회 제안 역시 같은 맥락에서 논의가 진척되게 된다. 엄밀히 이야기해서 노무현의 죽음을 매개로 사회운동의 의제를 결합해보자는 각종 실용주의적 실천은 주체적 역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다.

그리하여 5월 30일 노무현 장례이후 민중운동 세력들이 함께 힘을 모아 경제위기 손실전가에 맞서 민중의 생존권을 제기하자는 범국민 대회도 결국 그 본래 취지와 달리 노무현 추모행렬을 경찰이 탄압한 것으로 비춰지고 말았다. 시청 앞으로 나가자는 몇몇 시민들의 주장도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경제위기 민중들의 생존과 민주주의를 둘러싼 쟁점은 실종되고 시청 앞으로 대회를 치러야 했는데 어떻게 투쟁전술을 운영했는가에 대한 평가로 논점이 축소된 것이다.

노무현의 죽음 이후 민중운동세력 중 일부는 노무현 추모 국면을 반이명박 전선의 확대 계기로 삼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주체역량에 대한 정확한 진단 없이 반이명박 전선 속에서 민중운동진영이 상황을 주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의 정치노선(자유주의자로서의 고백)을 속이는 것이거나 주체역량에 대한 오판에 불과하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후자인데, 왜냐하면 현재 운동의 역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민중운동진영의 끊임없는 실용적 선택은 결국 보수야당의 정치적 헤게모니 확보로 귀결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쟁점을 정확히 하지 못하는 투쟁은 투쟁의 목표 달성(문제의 제기와 논점 형성)과 대중 주체화에 실패한다.


반이명박 전선의 확대: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이명박 정권 들어 민주주의가 후퇴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대중의 정치적 발언을 불가하게 하고, 자신을 조직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한 것이 가장 명백한 증거다. 거리는 물론이거니와 대학 안에서조차 정치적 행동이 제한되는 등 집회 시위의 자유가 급격히 축소되고 있다. 건설노조와 운수노조에 대한 노동부의 노조신고 반려 협박(단결권 부정)이나 전교조와 공공상용직노조에 대한 단협 무효화 선언(단체교섭권 부정), 필수공익사업장 지정 및 업무개시명령제(단체행동권 부정) 들에서 보듯 이제는 노동기본권마저 박탈하고 있다. 공공부문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실업자 등 노동권 확대를 도모해온 노동자 운동의 이제껏 시도를 물거품으로 만들고, 그에 항의하는 어떠한 정치적 행동도 불가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지금 정치권에서, 시청 앞 거리에서 민주주의 문제가 제기되는 방식은 노동권과 생존권을 매개하기보다는 김대중으로 표상되는 과거 인민주의자들이 제기해왔던 방식(지역주의를 매개로 민주주의를 제기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허구적인 논점을 제기하고 이를 민주주의의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계하여 정치쟁점으로 만들고 자신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확대하는 방식 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많은 사람들은 현 시기 민주주의의 후퇴를 이명박 정권의 정치스타일에서 찾으려 하고 있다. 이른바 ‘소통의지 없음’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는 원인 분석 없는 묘사에 불과한 것이고, 따라서 또 다시 여기서 ‘민주주의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군사파쇼와의 유사성을 찾는데 몰두한다. 군사파쇼에 맞서 전 민중이 투쟁했던 87년 그 거대한 투쟁의 물결이 ‘6월 항쟁 정신 계승’으로 축소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어떤 투쟁도 옛 추억에 연원을 두고 승리하기는 어렵다. 2009년 6월 항쟁의 연출은 가능할지 모르나, 재현은 불가하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 실현되는 것은 민중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보수야당 및 시민운동 세력의 헤게모니일 뿐이다.

반이명박 전선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오늘날 제기되는 민주주의 문제가 경제위기라는 정세아래 어떻게 후퇴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폭로가 필요하다. 현실의 구체적인 쟁점과 연계되어야 한다. 현재 경제위기 국면은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완전히 파탄지경에 이르렀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고, 현재 민주주의의 후퇴는 지배세력들이 어떠한 정치적 대안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대중들에 대한 지배세력들의 헤게모니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폭압적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결국 현 시기 민주주의 후퇴는 신자유주의 정책 파탄에 따른 인민의 불만을 사전에 잠재우고, 다시금 몇몇 지배세력들만 생존하기 위한 방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다. 민중운동 세력은 오늘날 민주주의 문제를 객관적 정세인식에 근거해서 제기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 문제를 둘러싼 실질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반신자유주의 전선은 민중생존권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가 정치에서 민주주의를 어떻게 후퇴시키고, 어떻게 배제하는지를 정확히 보아야 한다. 노동권, 생존권과 괴리된 민주주의 투쟁은 유령(과거사 청산, 김대중, 노무현)과 직면할 뿐이다.


현재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오늘날 대중이 처한 상황을 보자. 경제위기 국면에서 대중의 수동성은 기본적으로 더욱 강화된다. 한편에서는 국가나 기업의 운명과 자신의 운명을 일치시키는 경향이 강화되고, 민중의 권리를 드러내고자 하는 사회운동의 고유한 쟁점은 쉽게 기각될 수 있다. 동시에 허구적이거나 퇴행적 쟁점에 자신의 불만을 집중시키며 무정형의 행동으로 표출될 수도 있다. 대중의 이런 수동적 상황은 대중 자신을 조직하는 운동, 대중의 권리를 제기하는 민주주의보다는 특정한 인격체에 대한 연민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경제위기 손실의 일방적 전가에 따른 생존권 위협과 미래에 대한 불투명성이 급증했음에도 이에 맞서는 대중운동(특히 노동조합운동)은 먼 미래형이지만, 자신과 ‘비극적 영웅(?)’으로서 노무현을 동일시하면서 노무현에 대한 추모의 물결은 현재진행형인 것도 여기서 기인한다. 그리고 정리해고자 명단에 들어간 노동자, 노조탄압에 직면한 노동조합 등 현 시기 대중운동이 피해 당사자 운동에서 인민의 보편적인 운동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사이에 ‘6월 항쟁 계승, 민주회복’ 같은 퇴행적 쟁점을 주도하는 운동이 주도권을 잡으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도는 ‘정치권’의 헤게모니 다툼의 장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이 과정에서 민중운동의 성과는 또다시 유실되고 마는 비극을 반복하게 될 지도 모른다. 5.30범국민대회의 실패, 박종태 열사 투쟁의 교훈을 놓쳐서는 안 된다.

대중의 자기 조직화, 주체화, 그리고 운동역량의 강화를 염두에 두지 않는 대중운동은 결국 모래성일 뿐이다. 대중이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자각하는 운동이 아니고서는 사회운동의 이념 형성은 먼 미래 이야기일 수밖에 없고, 대중이 스스로 조직하려는 대중조직의 운동이 아니고서는 거대한 대중운동의 물결은 허황된 꿈일 뿐이다.

주체역량이 취약할수록 여론의 추이에 의존하는 운동을 하게 된다. 더딘 한 걸음을 가더라도 운동의 주체화에 기여할 수 있는 운동과 이를 조직하려는 시도가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5월 6월 투쟁과정에서 우리는 구체적인 쟁점에 근거한 운동, 파업투쟁과 거리 선전전이 오히려 현실의 실제 쟁점을 정확히 부각하고, 오늘날 이 시대 민주주의 문제, 대중의 자기조직화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제고하게 했다는 사실을 환기해야 한다. 쌍용자동차 노조의 옥쇄파업과 화물연대의 파업 투쟁이, 최저임금을 전 국민적인 쟁점으로 제기하려는 노동조합의 선전전이,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정면에서 비판하려 했던 노동자의 결의대회가, 오늘날 정치에서 무엇이 배제되어 있으며 어떤 의제가 정치적인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숙고를 가능하게 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6월 말, 7월 초 민중운동은 다시 한번 투쟁태세를 재정비하고 있다. 20여년 전 화려했던 과거를 손짓하는 김대중의 선동과 보수야당 그리고 시민단체들의 발빠른 대응도 가속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짓누르려 하고 있다. 민중운동 전체가 기로에 서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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