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기사>> - 20대 보수화? 이면

새여정 2007.05.04 12:41 조회 수 : 887 추천:6

"구조조정은 해야죠…나는 빼고!"  
  [20대 보수화?그 이면②]노동ㆍ노동자를 보는 모순된 시선  

  2007-05-04 오전 9:05:52    

  
  "요즘 애들한테는 희망이 없어요. 파시스트나 안 되면 다행이야."
  
  종종 진보단체들의 정책자문 역할을 하는 한 대학 교수가 스치듯이 한 얘기다. 대학생이 변했다는 얘기는 이제 '식상한' 말이 된 지 오래다. '어른들'은 "20대들이 변했다"고 한탄한다. 하지만 20대들은 자신들을 바라보는 그 '못마땅한' 눈빛이 당황스럽다고 한다.
  
  오히려 자신들을 8% 가까이 되는 청년실업률 속으로 내 몬 어른들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이런 점까지 포함해 요즘의 20대가 과거의 20대와 다른 것만은 사실이다. 주요대학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당지지도 조사에서 매번 1위는 한나라당이다. '보수적'이라는 40-50대와 비슷한 성향을 보인다. 강의실 대신 거리에 섰던 시간이 더 많은 '선배들'과 확실히 다르다.
  
  "민주화요? 이미 어느 정도 이룬 것 아닌가요? 지금 우리사회가 신경써야 할 것은 경제죠."
  
  그러나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과거와 다르다. 복지보다는 경쟁을, 분배보다는 성장을 중시한다.
  
▲ 20대가 변했다고 한다. 확실히 지금의 20대는 그 이전의 선배들과 다르다. 민주화보다는 경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복지보다는 경쟁이 살 길이라고 믿는다. ⓒ프레시안  

  "'구조조정 반대' 논리가 더 빈약해요"
  
  아직 학생인 대학생들과 막 졸업해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이들, 그리고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대들이 노동과 노동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취재하면서 발견한 것은 그들의 생각 속에 자리 잡은 '모순들'이었다.
  
  "내 안정은 중요하지만 구조조정은 필요하다", "노동운동은 싫지만 노조에 가입하겠다", "자유주의는 좋은 것이지만 내 권리는 보장받아야 한다." 이들은 각기 다른 맥락의 얘기를 뒤섞어 쏟아냈다.
  
▲ 20대의 생각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혼돈기 같았다. 인터뷰 과정에서 앞의 대답과 상반되는 맥락의 답을 내놓기도 했다. ⓒ프레시안  

  앞으로 직업을 구할 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안정'이라고 하는 대학 4학년 김희정 양(가명)은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기업 구조조정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는 "경쟁력을 위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답했다. 하지만 구조조정은 노동자의 고용을 불안하게 만든다.
  
  김 양에게 "본인이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냐"고 묻자 그는 "내가 경쟁력을 키워 (구조조정) 대상에 안 끼면 된다"고 답했다.
  
  "과연 지금처럼 치열한 경쟁시대에 '구조조정은 안 된다'는 논리가 먹힐까요? 경쟁이 세계적 추세인걸요. 오히려 저는 반대하는 쪽의 논리가 더 빈약하다고 생각해요. 각자 경쟁력을 갖춰 그 속에서 살아남도록 노력해야 하는 거죠."
  
  이처럼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시장경제의 경쟁 논리를 '거부할 수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박준식 한림대 교수가 한국노총의 용역을 받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대학생 응답자의 70.1%가 자본주의를 긍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실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진 지 2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마당에 이들 젊은이들 입장에서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체제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이들에게 자본주의는 저항의 대상이 아니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대상이다. (☞ 관련기사 보기 : 대학생 70.1%, 자본주의 긍정적으로 평가)
  
  하지만 자본주의 질서에 따라 밀려나야 할 대상이 자기 자신이 되면 사정은 조금 달라진다. 그래서 이들이 선택한 적응 방법은 자신이 '구조조정의 대상자'에 포함될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애초부터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한다는 것. 지난 2월 서울의 한 대학을 졸업하고 학원강사를 하고 있는 김동운 씨는 "친구들 가운데 소위 '스펙'(학점과 영어점수 등)이 되는 아이들은 모두 공기업으로 간다"고 말했다.
  
  "아니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거나 '고시 공부'에 매달리지요. 대기업은 오히려 그 다음입니다."
  
  "노동조합? 내 방패막이가 되어 줘!"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에 대한 시선도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ㄱ기업에서 1년 계약의 기간제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이모 씨(26)는 "잦은 노동조합의 '투쟁'이 우리 기업들의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한 요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기업에 대한 정부의 간섭에 대해서도 그는 "지나친 규제가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가로 막는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그는 기업 활동의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관점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호소하면서는 "우리 회사의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들의 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각종 사회적 현안에 노동조합이 나서는 것을 '삐딱'하게 보면서도, 자신의 '방패막이'로서의 노조는 긍정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의 관점은, 앞의 한국노총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노조에 참여할 의사가 있다고 밝히면서도 현재의 노동운동이 투쟁위주의 운동노선으로 인해 외면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응답자가 70% 가까이 됐던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이런 20대의 변화는 향후 노동운동에도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 노동운동가는 "지금의 20대가 조합원들의 다수가 되는 10년 후면 노동운동의 모습은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며 "조합원들의 실리주의 경향은 점점 강화되고 자신들과 직접 관련이 없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참여는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무리 취업난이어도 일한 만큼 정당하게 대우 받고 싶다"
  
▲ 노동, 일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학원과 학점에 매달리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일정한 수준의 삶의 질을 보장받을 수 있는 곳에 취직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노동, 즉 일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20대에게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해 안정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삶의 질 또한 중요하다. 누구보다 인정받고 싶어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삶을 벼랑 끝까지 내몰고 싶은 생각은 없다. 노동은 자아실현의 이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적절한 수준의 삶의 질을 보장받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지난 2월 서울의 한 대학을 졸업해 H대기업에 입사한 문재희 씨(24, 가명)는 "이력서를 낼 회사를 선택한 기준은 복지후생이었다"고 말했다. 적절한 휴가와 지나치게 '빡빡하지' 않은 근로환경이 우선 순위가 됐다는 것이다.
  
  대학생들 역시 대부분 "일한만큼 정당하게 대우받을 수 있는 회사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삶의 질에 대한 욕구가 강한 것이다. 취업정보사이트인 인크루트가 260개의 중소·대기업을 상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신입사원의 평균 퇴사비율은 28.8%였다. 그렇게 어렵다는 취업난을 뚫고 들어간 회사에서 1년 이내에 회사를 그만두는 신입사원이 10명 중 3명 꼴인 것이다.
  
  입사 2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나온 김모 씨(28)는 지금 다른 기업에의 취직을 준비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일은 너무 많고 월급은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다."
  
  인크루트의 또 다른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사무직과 대기업 생산직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 것이냐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 5042명 가운데 3179명(63%)이 대기업 생산직을 골랐다.
  
  과거 같으면 사무직을 더 선호했겠지만 지금은 기름때가 묻더라도 더 높은 임금과 복지혜택을 누릴 수 있고 상대적으로 고용이 안정된 대기업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수? No!"…"노무현 정권, '진보'아닌 것들로 '진보' 채워 놓아"
  
▲ 누가 이들의 머리속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었을까? 노무현 정권의 등장 이후 혼란스러워진 진보와 보수의 개념도 한 가지 원인이라는 지적이 있다. ⓒ프레시안  

  20대의 이같은 '실리주의적 경향'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서적으로 가장 예민한 청소년기에 외환위기라는 큰 태풍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외환위기 때 부모가 명예퇴직 당하고 하루 아침에 가계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보고 들은 현재의 20대가 이전 세대에 비해 경제적인 마인드가 유독 발달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더욱이 대학의 공동체가 무너져 내리면서 20대가 주로 접하게 되는 '생각'은 사회 주류의 것들뿐이다. 부모의 영향력도 과거보다 막대해졌다. 80년대의 20대는 상당수가 그들의 부모보다 나은 학벌에 더 '똑똑한' 자식이었지만 지금의 20대는 부모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못한 경우도 종종 있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20대 구직자 17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8.7%가 구직활동 시 부모의 관여도가 크다고 답했다. 심지어는 부모가 채용 문의를 하거나 면접시험에 동행했다는 응답도 각각 9.5%, 3.4%였다. 부모 세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실제 한 대학에서 만난 김희정 양은 "취업 문제를 부모님과 가장 많이 상의한다"고 말했다.
  
  우리사회에서 또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라는 개념이 혼재ㆍ왜곡돼 사용되는 것도 20대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 중 하나다. 한 대학생은 "한미FTA 같은 개방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보수적인 것 아니냐"고 되묻기도 했다.
  
  3년간 C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한 시간강사는 "20대는 아직 가치관이 완전히 정립되지 않은 시기로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며 "특히 노무현 정권은 진보가 아닌 것들을 '진보'라는 개념 속에 담아둠으로써 학생들의 생각에 혼란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사회 통념상 '보수'에 속하는 것들을 노무현 정권이 '진보'라고 주장함으로써 '진보'의 개념을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개방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더 보수적"이라는 20대의 주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쇄국론자'로 몰아붙이며 "개방만이 살 길"이라고 강변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논리를 그대로 닮아 있었다. 이 시간강사는 "온갖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밀어붙이면서도 스스로 진보를 자처하며 '좌파신자유주의'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낸 노 대통령은 젊은이들의 의식 변화에 큰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20대의 이율배반적인 사고들, 그리고 그것들을 스스로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의식구조는 요즘 20대들의 '생각 없음'의 산물이라기보다는 그들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모순이 반영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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