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평택 미군기지 확장저지투쟁의 최근 상황

제리 2007.01.11 12:58 조회 수 : 775 추천:5

뼈아픈 비판과 반성없이, 단 한 걸음의 전진도 없다  

[기고] 평택 미군기지 확장저지투쟁의 최근 상황  
  

이소형(사회진보연대)  / 2007년01월11일 8시49분  

언론에 의해 알려진 주민-정부 간의 협상의 왜곡보도


최근 언론은 팽성 주민대책위와 정부 간의 협상이 진행되고 있으며, 주민이주문제가 곧 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기사를 보도하고 있다. 또한 이에 따라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투쟁이 이제 막을 내리게 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보도는 협상의 내용자체를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협상과정에서 여전히 고압적인 자세로 주민들의 입지를 좁히고 협상을 속전속결로 끝내려는 정부의 입장을 대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기만적이다.


지난 1월 2일에 시작된 팽성 주민대책위와 정부 간의 협상에 대해서 국무조정실 주한미군이전대책기획단 관계자는 논의 의제를 '주민이주와 생계지원'으로 한정하기로 했다고 발언했고, 언론은 주민들이 이주 원칙에 합의했다고 보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날 협상의 자리에서 주민대책위는 주민이주의 문제를 대화의 의제로 논의하는 것과 함께 평택미군기지 확장사업에 대한 재협상의 요구와 철조망 철거의 요구를 지속적으로 제기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주민대책위는 평택 미군기지 확장사업에 대한 재협상을 논의할 수 있는 자리를 요청했고 정부는 이를 “하나의 의제로 받아서 이야기하자”로 답하였다.


따라서 주민이 이주에 대한 협의를 시작한 것은 사실이나, 협의의 주제를 이주의 문제에 한정지은 것이 합의된 것은 사실이 아니다. 당일 합의문에서 ‘주민이주와 생계지원’이라는 문구는 주민측이 요구한 재협상에 대한 요구로 그 문구 뒤에 ‘등, 주민요구사항’으로 정리된 바 있다. 따라서 현재 진행된 협상만으로 '주민 이주 합의'를 기정사실화 할 수는 없다.


또한 대부분의 언론은 대화를 주민대책위의 요구에 의해 '중간발표 없이 비공개하기로 했다'고 보도하고 있는데, 이 역시 사실관계가 다르다. 주민대책위는 정부측에 아무것도 합의된 것이 없는데 마치 모든 것이 해결된 양 떠들어대는 언론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였고 “2차 대화는 비공개를 하되, 그 이후 대화에 대해서는 주민대책위 협의 이후에 재논의하자”는 것이 이날까지의 결정사항이었으며 주민대책위 회의는 아직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 언론들은 이후 대화를 '비공개'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고, 정부는 여기에다 주민 이주지원내용을 언론에 노골적으로 알렸다.


주민들의 상황과 주민대책위의 판단





1월 2일, 정부는 국무조정실은 보도자료를 통해 "정부는 인도가처분 승소에 따른 (생가) 철거시한인 1.4일을 앞두고 평택미군기지 이전반대 팽성주민대책위가 1월 1일 이주관련 협의를 전격 제의해 옴에 따라 이를 수용"한다며 "이번 협의는 지난해 11월 말 주민 측이 대화재개 의사를 전달해옴에 따라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됐다"고 발표했다.


국무조정실의 발표대로, 주민대책위는 김지태 이장의 석방을 조건으로 주민들의 이주대책을 협의할 것을 정부 측에 요청하였다. 주민대책위 간부들은 현재 장기화된 투쟁에서 주민들의 피로와 좌절은 극단에 달하였다는 상황을 인식하여 주민들의 동요를 막고 마을 공동체를 보존하기 위해 최선의 방안을 찾고자 하였다.


12월 27일 오전, 주민대책위는 주민모임을 소집하여, 김지태 위원장 석방을 조건으로 하는 이주에 관한 정부와의 협의가 진행되고 있음을 주민들에게 공식적으로 보고하였다. 그리고 다음날인 12월 28일, 김지태 위원장이 석방되었다. 1월 2일 첫 번째 합의문이 발표되고, 1월 3일 두 번째 협상이 진행되었다. 1월 6일(토)에 주민총회가 열렸고, 김지태 위원장이 주민들에게 현재 싸움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솔직한 의견을 구했다. 그러나 계속 싸워나가는 것에 대해 주민들 모두는 의지를 표명하지 못했다.


현재 이주의 상과 정부의 생계대책지원 내용에 대한 주민들의 통일된 의견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남아있는 가구들이 흩어지지 않고 대추리, 도두리 공동체를 유지해야할 수 있도록 집단적인 이주의 방식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만을 분명히 밝히고 있을 뿐이다. 주민들의 투쟁의 구심이었던 김지태 위원장이 구속된 지 7개월이 지나는 동안, 주민들은 투쟁의 동력을 소진해갔으며 이 와중에 10월 추석이후, 도두리 20여가구 전체가 이주에 합의하게 되었다.


이후, 남은 대추리 46가구 주민들은 좌절과 고립감으로 괴로워하고 있었으며, 투쟁을 지속해야 한다는 결정도, 포기하고 이주해야 한다는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김지태 위원장의 석방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9.24 4차 평화대행진이후, 범대위의 겨울나기 사업, 자매결연 사업 등의 계획이 제출되었지만 주민들의 막막한 생계대책을 해소할 수 없었고, 주민들이 투쟁을 지속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원칙은 설득력을 잃게 되었다.


주민대책위 내에서는 아직까지 미군기지 확장 반대라는 운동의 대의와 원칙을 어떻게 사고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운동의 대의와 원칙만으로 더 이상 싸움을 지속시키기 어렵다는 주민들의 판단이 이미 기정사실화되어 있지만, 향후 범대위와의 연대방식은 여전히 쟁점으로 남아있다. 장기화된 싸움으로 주민과 주민대책위 간부들은 극도로 심신이 지쳐있는 상태이고, 생계대책의 현실적 막막함에 가로막혀 있다.


평택 범대위의 인식과 판단


12월 10일, 평택 범대위 공동 집행위원장단에서 주민대책위는 김지태 위원장 석방을 조건으로 이주대책에 대해 정부와 대화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주민대책위는 이 사실을 공동 집행위원장단 회의에 한정하여 공유할 것을 요청하였고, 회의에 참석한 공동집행위원장들은 이를 존중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12월 14일 다시 열린 공동 집행위원장단회의에서는 주민-정부간 협상문제에 대한 이견이 확인되었고 이 문제에 대한 재논의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22일 김위원장의 재판이후, 12월 23일 공동집행위원장과 집행위원회 참가단체들, 평택지킴이들이 참가하여 확대 공동집행위원회 수련회를 개최하였고, 이 자리에서는 이 상황에 대한 범대위의 판단을 논의하였다. 주민대책위 측은 주민들이 더 이상 투쟁을 지속할 수 없기에, 김위원장의 석방을 조건으로 이주문제를 협상하고 있으며, 주민들이 3년간의 투쟁을 접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존중해 달라는 요지로 발언하였다.





이 자리에서는 12월 10일 공동집행위원장단의 결정에 대한 이견이 제기되었는다. 첫째, 주민-정부간의 협의방식과 과정을 비롯한 주민들의 열악했던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공동 집행위원장단에서만 공유되고 있었던 점, 이로 인해 긴급한 상황에 대한 범대위의 조직적인 논의와 판단이 지속적으로 유보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기간 공집장회의-집행위원회로 이어지는 논의구조의 비민주성의 문제로 제기되었다.


둘째, 현시기 진행되고 있는 주민-정부간 합의가 주민대책위의 상황을 더욱 불리하게 만드는 것이기에 이를 즉각 중단하고 범대위와 함께 새로운 협상의 방식과 내용, 정책적 대안을 모색할 것이 제안되었다. 첫 번째 문제에 대해 공동 집행위원장단은 주민대책위에 양해를 구하고 12월 27일 집행위원회에서 이 상황을 공유하고 논의하기로 결정하는 것으로 결론을 도출하였고, 두 번째 문제에 대해서는 다양한 입장들이 개진되었으나 결국 주민대책위의 기존의 입장을 바꿔내지 못하였다.


12월 27일, 66차 집행위원회에서 주민-정부간 협상 사실이 보고되었고, 범대위가 이에 대한 자기평가와 향후 운동의 방침을 시급하게 내려야 한다는 필요가 제기되었다. 12월 29일과 31일 확대 공동집행위원장단 회의와 팽성 주민대책위와의 연석회의가 개최되었다. 이 자리에서 범대위는 ‘평택주민-정부간 대화에 즈음한 주민대책위, 평택 범대위의 입장’을 공동으로 발표할 것을 제안하였는데, 이에 대해 주민대책위는 공동성명서의 일부문안의 삭제와 이견을 제기하였고, 공동 입장발표여부 자체에 대한 주민대책위의 판단의 시간을 요청되었다. 1월 4일 67차 집행위원회에서 주민대책위의 입장을 가져오기로 하였으나, 현재까지 주민대책위의 입장이 정리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1월 4일 67차 집행위원회에서는 2006년 투쟁평가와 향후계획을 논의하면서 △현재 주민-정부간의 협의의 문제를 범대위가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기간의 논의과정에서 범대위의 논의구조의 폐쇄성과 비민주성에 대한 문제가 쟁점이 되었다. 이에 대한 토론이 장시간 이어졌으나 범대위의 인식과 판단에 대한 결론은 모아지지 못하였다. 현재의 상황에 대해 공동 집행위원장단 참가 단체 및 집행위원회 내에서는 각기 상이한 입장들을 제기하며 현 국면을 해석하고 있으며, 기본적인 인식의 관점을 통일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팽성 주민대책위는 2003년에 결성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저지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왔으며, 평화의 땅을 지켜내기 위해 치열한 투쟁의 고삐를 결코 늦춘 적이 없다. 900일에 가까운 주민촛불집회가 매일같이 진행되었고, 농성, 항의방문, 집회 등 평택 범대위의 투쟁의 최전선에서 주민들은 언제나 굳건히 자리를 지켜왔다. 한국사회에서 벌어진 미군 기지반대운동 중 가장 많은 주민들이 그 어떤 투쟁보다 더욱 강력한 단결로 결속되어 있었고, 그 힘은 2006년 한 해 동안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운동의 대중적 공간을 열어내었다.


그러나 미제국주의의 군사패권전략과 이에 조응하는 한국정부는 유례없는 국가폭력을 가하며 주민들의 투쟁의 의지를 질식시켜왔다. 5월 4일, 80년 광주를 연상케 하는 군사작전과 유혈진압은 주민들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고, 이후 공권력에 의한 잔인무도한 폭력은 주민들의 기본적인 인권과 생존권을 파괴하였다.


뿐만 아니라 주민 개개인에게 가해지는 회유와 협박은 끊임없이 이어져 주민공동체를 파괴하였고, 평택범대위와의 연대투쟁의 정신을 훼손시켰다. 정부는 단 하루 만에 들판과 마을을 ‘군사보호시설’을 둔갑시켰고, 이중삼중의 불법검문소를 설치하여 대추리, 도두리를 ‘감옥’으로 만들어 버렸다. 주민들은 눈앞에 보이는 자신의 농토와 피 같은 수확이 시커먼 철조망과 군부대에 의해 짓밟히는 모습을 매일같이 보아야만했고, 하루가 멀다하고 국방부관계자들과 경찰은 마을을 휘젓고 다니며 주민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였다. 이처럼 대추리, 도두리에서는 경악할 만한 인권유린사태가 몇 달째 지속되어왔고, 이 수세적인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대중투쟁은 전개되지 못하였다. 이 과정에서 주민대책위는 6월 초 정부의 대화요청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부는 대화를 시작하면서 6월 5일 자진 출두한 김지태 위원장을 구속시켰으며, 대화국면을 곧 의도적으로 파기하였다. 애초부터 정부는 주민과 협상을 할 생각이 없었고, 주민들이 지쳐나가 스스로 무릎 꿇게 만들려 했다. 정부는 현재까지 평택 미군 기지 확장사업에 대한 마스터 플랜 조차 작성되지 않았고, 2008년까지의 공사완료라는 LPP개정안은 이미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상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공사강행과 주민굴복이라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 탄압의 고삐를 전혀 늦추지 않았고, 주민에게는 공갈협박을, 국민전체를 상대로 대사기극을 거리낌 없이 가해왔던 것이다.


2006년 하반기 동안 이는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났는데, 9.24 평화대행진을 앞두고, 빈집철거를 단행하여 공사단행의 의지를 표명하였고, 김지태 위원장의 재판을 고의적으로 연기시키며, 주민들을 지치게 하고 도두리 주민들을 회유, 협박하여 협의 매수하였다. 또한 도탄에 빠진 주민들의 분노를 자극하기 위해, 김지태 위원장에게 실형2년을 선고하고, 주민들을 ‘죄인’으로 매도하였다. 이렇듯 정부가 행사한 일련의 행태는 목숨을 걸고 끝까지 투쟁을 이어가고자 했던 주민들에게는 살인적인 폭력 그 자체였다. 그리고 최근 주민들이 투쟁을 지속하는 길을 다시 한번 선택하려 할 때, 정부는 이제 생계문제를 볼모로 주민들을 옥죄여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해 11월, 주민대책위 간부들은 김지태 위원장의 장기투옥과 주민들의 공동체 파괴만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주민들의 마지막 저지선이라고 판단하였고, 정부와의 협상을 먼저 제의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정부는 현재 주민대책위의 마지막 생존의 몸부림조차 고압적인 자세로 제압하며 주민의 고통을 기만하고 있다. 12월15일, 법원이 다시 한 번 정부 편에 손을 들어주면서 인도가처분 신청에 대한 항소심 판결은 뒤집어졌다. 정부는 곧 1월 4일자로 주민들의 생가를 철거할 수 있다는 법적 근거를 획득하게 되었다. 이는 심지어 평택 미군기지 확장사업이 5년 연기가 불가피하다는 언론의 보도가 공개된 직후의 일이었다. 정부는 마치 큰 선심이라도 쓰듯 김지태 이장석방을 위해 법원에 탄원서를 내줬고, ‘주민대책위가 대화요청을 받아들이고’, 1월 4일 생가철거를 유보해 줌으로서,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가능해졌다고 떠들어대고 있다.


이처럼 정부당국의 체계적인 탄압과 주민들에 대한 고사작전은 주민대책위로 하여금 김 위원장의 석방과 주민-정부 간의 협상을 맞바꾸는 선택을 하도록 만들었다. 주민대표가 없는 상태에서 투쟁을 지속하는 것도 협상을 진행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았던 주민들의 가장 취약한 조건 그 자체가 협상의 보루가 되어버린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주민들의 불리한 입지를 활용하여 속전속결로 협상을 끝내려 언론보도를 조작하는 작태를 보이는 한편 주민들에게는 이전의 협의 매수된 주민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보상금을 올려주겠다며 역겨운 생색을 내고 있다.


우리는 한미동맹과 공권력의 노골적인 폭력에 의해 민중의 투쟁의 힘이 물리적으로 밀릴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분노하고 있으며, 생존의 벼랑 끝에서 정부와의 협상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주민대책위의 판단을 안타깝고 가슴 아프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의 상황이 평택 미군기지 확장저지투쟁의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패배주의적이며 청산주의적인 인식에 견결히 반대한다. 미국의 군사패권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고 있는 한국 민중들의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만약, 우리의 운동의 조건이 불리한 입지에 처해있다면, 전술적으로 유리한 조건으로 변화해가는 과정만이 필요할 뿐이며, 투쟁을 가로막는 장벽과 탄압 앞에는 오직 새로운 투쟁주체의 형성과 정세에 적합한 조직적 대응만이 필요할 뿐이다.


2006년 가장 치열하고 지난한 투쟁에 선봉에 서있던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은 이제 또 다른 조건에서 새로운 역할과 내용으로 평택 미군기지 확장저지투쟁에 연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것은 지금 진행되고 있는 협상과정에서 운동의 대의와 원칙적 관점을 최대한 유지해나가고, 2007년 성토작업을 저지하는 투쟁의 현장에서, 지금 어깨 걸고 있는 수많은 민중들의 연대의 힘을 다시 한번 믿는 것이며, 또한 다시 한번 함께 나아가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뼈아픈 비판과 반성으로 현실을 직시하자


평택 범대위 공동 집행위원장단 및 집행위원회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철저하게 반성하고 평가해야 한다.





지난 12월 10일 공동 집행위원장단 회의에서 주민대책위로부터 주민-정부간의 협상과정을 ‘통보받았다’는 사실부터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9.24 평화대행진 이후 범대위 및 운동진영은 주민들의 열악한 조건을 함께 공동으로 책임지며 이후 투쟁을 예비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 왔는가. 주민대책위가 지속적으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결국엔 이후 투쟁을 한 치도 전망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운동진영은 무능하게도 상황을 방기하고 있었다. 2006년 하반기 민중 총궐기가 진행되었던 시기에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투쟁은 명백히 멈춰져 있었고, 다시금 투쟁동력을 복구하기 위한 조직재정비의 노력은 부재했다.


두 번째 문제는 이 협상사실이 공개적으로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평택 범대위를 비롯한 운동진영은 이 상황을 평택 미군 기지 확장 저지투쟁의 중차대한 한 국면의 변화로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일련의 상황은 결코 정보공유의 차원에서 문제가 아니었고, 또한 특정 회의의 차원에 한정해 상황을 이해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2월 10일 범대위 공동 집행위원장단 회의의 결정은 무책임하였다. 당시 범대위는 주민-정부 간의 협상을 핵심 투쟁주체의 보존과 대중투쟁을 고양시키는 하나의 계기로 적극적으로 사고하지 못했고, 그 결과 현재에도 주민들이 처한 불리한 입지를 바꿀 수 있는 운동적인 개입이 어려운 상황을 만들고 말았다.


여기서 당시 주민대책위 측이 요구한 정보의 비공개원칙을 존중해야 했다는 것과 당시 상황을 심각한 국면의 변화로 인식하여 평택 범대위의 집행위원회 및 참가단체들이 이를 어떻게 대응해나갈 것인가에 대해 소통하고 지혜를 모아가는 과정이 필요했다는 주장은 전혀 별개의 것임을 확인하자. 긴급한 상황에 대한 조직적인 대응방안은 평택 범대위의 논의체계와 집행구조를 최대한 유연하게 활용하면서 논의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투쟁을 조직하고 책임져왔던 범대위 및 운동진영 모두는 다음과 같은 철저한 평가와 반성을 진행해야 한다. 2006년 하반기 내내, 김지태 이장 석방문제에 대해 주민들이 매우 절박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더 이상 투쟁의 원칙만으로 주민들을 설득할 수 없는 열악한 현지 상황이 객관적으로 분명히 드러나고 있었다면 우리는 이 긴급하고 심각한 상황에 대해 주민대책위의 입장을 충분히 공감하는 입장에서 얼마나 주민들과 소통하려했고 운동의 전망을 설득하려 노력했는가? 또한 우리는 투쟁의 중요한 국면변화가 충분히 예상되고 있는 상황에서 평택 범대위 내부의 취약한 논의력을 보완하고, 보다 조직적인 투쟁의 결의를 모아내기 위해 집행위원회 및 참가단체, 각 지역의 운동단위들과 소통하고 이후 투쟁방향을 모색하려 했는가? 또한 우리는 하반기 이후 급속히 떨어진 평택 투쟁의 동력과 범대위 참가단체들의 결합력을 높이기 위해 주민들의 상황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발빠르게 공유하고 투쟁을 호소하기 위한 재조직화의 노력을 기울였는가?


아직까지도 운동진영의 뼈아픈 반성과 평가는 논의되지 못하고 있으며, 평택 범대위의 향후 운동방향은 제출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주민상황에 대한 평택 범대위 내의 다양한 인식의 차이가 존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운동의 대의와 원칙에 입각해 현 상황을 공동으로 인식하고, 이 운동을 함께했던 대중들에게 이제부터 어떻게 함께 싸워나가자는 입장을 제출하는 일은 운동진영의 기본적인 임무일 것이다.


언론의 왜곡에 의해 주민-협상과정과 주민들의 상황이 불필요한 의문과 오해를 일으키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주민들이 처한 객관적인 조건을 다시금 운동의 불씨로 만들어 내고, 평택투쟁의 대중적 동력을 우리 스스로 지켜나가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주민-정부 간 협상국면은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투쟁의 중대한 국면변화를 의미한다


전쟁기지로 바뀌게 될 농토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그곳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며 살아온 주민들의 평화적 생존권을 사수하고자 했던 투쟁은 한국사회의 보편적인 ‘평화’의 상징이 되었다. 수많은 대중들은 전쟁이 아닌 평화를 선택한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을 지지하였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반대하는 평택투쟁은 단지 경기도 지역의 사안이 아니라 양심있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동참해야 하는 범국민적인 운동이 되어왔다. 정부의 살인적인 탄압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지난 4년 동안 평화를 향한 민중들의 역사적인 투쟁을 이끌어왔던 것이다.


주민총회를 통해 결정된 주민대책위의 입장과 현재 진행되고 있는 협상은 이제부터 평택 미군기지확장저지투쟁이 더 이상 기존의 방식으로 진행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미군기지 확장사업이 5년이 유예되었고, 아직 전쟁기지 확장이라는 문제의 본질은 전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평택 미군기지확장 저지투쟁이 이제부터 전혀 다른 새로운 조건에서 전혀 다른 새로운 싸움을 준비해야 할 때임을 냉정하게 인식해야 한다. 이제 우리 앞엔 더욱 어렵고 열악해진 투쟁의 조건과 5년이라는 시간만이 남아있다. 지난 운동과정에서 운동진영이 해내지 못했던 한계와 무능함에 대해 뼈아픈 비판과 반성이 없다면, 우리는 앞으로 단 한 걸음도 전진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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