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책의 발간 자체가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딱 20년 전에 정식으로 출판된 카를 마르크스의 <1844년의 경제학 철학 수고>도 그렇다. 이 책은 한국전쟁 후 한국에서 최초로 출판된 마르크스의 저작이었다. 이미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의 숨통을 죄던 1987년, 마르크스의 저작은 그렇게 한반도의 남쪽에 출현했다.
이 <경제학 철학 수고>(강유원 옮김, 이론과실천 펴냄)가 다시 출간됐다. 20년 전 이 책을 출판한 탓에 고생을 했던 같은 출판사에서 펴낸 것만 빼고는 모든 것이 바뀌었다. 번역 역시 독일 철학을 정식으로 전공한 이에 의해 완전히 바뀌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이 다시 나온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1844년, 1987년, 그리고 2007년
<경제학 철학 수고>는 세상에 처음 선보일 때부터 특별했다. 마르크스가 20대 초반에 작성한 이 책은 쓰인 지 한 세기 만인 1932년에 독일 베를린에서 처음 세상에 선보였다. 이 책은 루카치, 마르쿠제 등에게 큰 영향을 줬지만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도 전에 나치에 의해 압살됐다. 이 책이 대중적으로 널리 읽힌 것은 또 한 세대가 지난 1950년대 후반이었다.
미국의 마르크스주의자 마셜 버먼이 쓴 <마르크스주의의 향연>(문명식 옮김, 이후 펴냄)은 소련이 수많은 언어로 번역해 널리 보급한 <경제학 철학 수고>의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를 생생히 증언한다. 1959년 컬럼비아 대학에 다니던 버먼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한 교수로부터 처음 이 책을 추천받았다. 그는 이 책을 접한 당시의 감동을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여기저기 아무데나 펼쳐 읽어보았다. 그리고는 갑자기 진땀을 흘리고 감동에 젖어, 옷을 벗어 던지고 눈물을 흘렸다. 온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나는 당장 계산대로 달려갔다. "이 책을 사야겠어요!" 백발이 성성한 직원은 차분히 말했다. '50센트입니다.' (…) 50센트? 그럼 10달러로 스무 권을 살 수 있잖아?"
마침 대학 도서관에서 일하고 받은 돈이 있던 버먼은 스무 권을 산 후 자신의 삶에 들어와 있던 모든 사람에게 책을 나눠줬다. 그는 책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읽어보면 깜짝 놀랄 겁니다. 물론 마르크스 책이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마르크스가 되기 이전에 쓴 겁니다. 이 책은 우리의 삶 전체가 어떻게 잘못되어 있는지 보여주지만, 또 당신을 행복하게도 해줄 겁니다."
자본주의는 인간을 어떻게 파괴하는가
잘 알려졌듯이 <경제학 철학 수고>는 스물여섯의 마르크스가 프랑스 파리에서 작성한 것이다. 당시 마르크스는 네 살 연상인 예니 폰 베스트팔렌과 결혼한 후 파리에서 평생에 걸쳐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있던 참이었다. 또 본격적으로 파리의 좌파(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와 교류하면서 세상의 비밀을 알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던 때였다.
행복한 신혼생활과 불행한 세상살이에서 온 괴리 때문이었을까?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인간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알고자 현실과 정면으로 대결하는 것을 선택한다. 바로 그 결과물이 <경제학 철학 수고>다. 그는 끈질기게 자본주의가 노동을 변질시켜 어떻게 노동자를 노동으로부터, 또 다른 노동자로부터, 더 나아가 세상으로부터 '소외'시키는지를 보여준다.
"노동은 부자를 위해서는 경이로운 작품을 생산하지만, 노동은 노동자를 위해서는 결핍을 생산하다. 그것은 궁전을 생산하지만 그러나 노동자를 위해서는 움막을 생산한다. (…) 그것은 노동을 기계로 대치하지만 노동자 일부를 야만적인 노동에 빠뜨리며 다른 일부를 기계로 만든다."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 속에서 스스로를 긍정하지 않고 부정하며, 행복을 느끼지 않고 불행을 느끼며, 자유롭고 육체적이며 정신적인 에너지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육체를 소모시키고 그의 정신을 황폐화시킨다는 것. (…) 노동하지 않을 때에는 그의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고, 노동할 때에는 편안하지 않다. 그런 까닭에 그의 노동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강요된 강제노동이다."
자본주의가 계속되는 한 출간은 계속된다
마르크스가 <경제학 철학 수고>에서 폭로했던 자본주의 사회에서 세상살이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바로 <경제학 철학 수고>가 1987년에 이어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나온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마르크스의 방점 하나, 용어 하나 풀어쓰지 않는 번역을 한" 철학자 강유원은 이렇게 얘기한다.
"(이 책의) 적실성에 관해서는 의문이 있을 수 있겠다. 이에 대해서는 오늘날 우리의 핍진한 삶을 만들어내면서 동시에 그것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위력은 여전히 자본주의 체제라는 것, 그런 까닭에 우리는마르크스를 우리의 사회적 삶과 그것에 배태되어 영위되는 개인의 삶에 관한 통찰의 출발점으로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
이 책을 20년 만에 다시 펴낸 출판인 김태경은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우리는 대답한다. 수고가 쓰였던 1844년에도, 출간되었던 1932년에도, 그리고 한국에 번역되었던 1987년에도, 그리고 지금에도 인간 사회의 저 심연에 똬리 틀어 입 벌리고 있는 악의 본질이 존재하는 한, 그에 대항하기 위한 강력한 사유의 무기로서 <경제학 철학 수고>는 아직도 유효하며, 그 어둠 속에서 길 잃고 방황할 때 다시 돌아가 반성해 볼 수 있는 인간 존재의 집으로서 출간 가치는 충분할 것이라고.그리고 우리는 그런 책을 고전이라 부른다고."
이 <경제학 철학 수고>(강유원 옮김, 이론과실천 펴냄)가 다시 출간됐다. 20년 전 이 책을 출판한 탓에 고생을 했던 같은 출판사에서 펴낸 것만 빼고는 모든 것이 바뀌었다. 번역 역시 독일 철학을 정식으로 전공한 이에 의해 완전히 바뀌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이 다시 나온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1844년, 1987년, 그리고 2007년
<경제학 철학 수고>는 세상에 처음 선보일 때부터 특별했다. 마르크스가 20대 초반에 작성한 이 책은 쓰인 지 한 세기 만인 1932년에 독일 베를린에서 처음 세상에 선보였다. 이 책은 루카치, 마르쿠제 등에게 큰 영향을 줬지만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도 전에 나치에 의해 압살됐다. 이 책이 대중적으로 널리 읽힌 것은 또 한 세대가 지난 1950년대 후반이었다.
미국의 마르크스주의자 마셜 버먼이 쓴 <마르크스주의의 향연>(문명식 옮김, 이후 펴냄)은 소련이 수많은 언어로 번역해 널리 보급한 <경제학 철학 수고>의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를 생생히 증언한다. 1959년 컬럼비아 대학에 다니던 버먼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한 교수로부터 처음 이 책을 추천받았다. 그는 이 책을 접한 당시의 감동을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여기저기 아무데나 펼쳐 읽어보았다. 그리고는 갑자기 진땀을 흘리고 감동에 젖어, 옷을 벗어 던지고 눈물을 흘렸다. 온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나는 당장 계산대로 달려갔다. "이 책을 사야겠어요!" 백발이 성성한 직원은 차분히 말했다. '50센트입니다.' (…) 50센트? 그럼 10달러로 스무 권을 살 수 있잖아?"
마침 대학 도서관에서 일하고 받은 돈이 있던 버먼은 스무 권을 산 후 자신의 삶에 들어와 있던 모든 사람에게 책을 나눠줬다. 그는 책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읽어보면 깜짝 놀랄 겁니다. 물론 마르크스 책이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마르크스가 되기 이전에 쓴 겁니다. 이 책은 우리의 삶 전체가 어떻게 잘못되어 있는지 보여주지만, 또 당신을 행복하게도 해줄 겁니다."
자본주의는 인간을 어떻게 파괴하는가
잘 알려졌듯이 <경제학 철학 수고>는 스물여섯의 마르크스가 프랑스 파리에서 작성한 것이다. 당시 마르크스는 네 살 연상인 예니 폰 베스트팔렌과 결혼한 후 파리에서 평생에 걸쳐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있던 참이었다. 또 본격적으로 파리의 좌파(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와 교류하면서 세상의 비밀을 알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던 때였다.
행복한 신혼생활과 불행한 세상살이에서 온 괴리 때문이었을까?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인간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알고자 현실과 정면으로 대결하는 것을 선택한다. 바로 그 결과물이 <경제학 철학 수고>다. 그는 끈질기게 자본주의가 노동을 변질시켜 어떻게 노동자를 노동으로부터, 또 다른 노동자로부터, 더 나아가 세상으로부터 '소외'시키는지를 보여준다.
"노동은 부자를 위해서는 경이로운 작품을 생산하지만, 노동은 노동자를 위해서는 결핍을 생산하다. 그것은 궁전을 생산하지만 그러나 노동자를 위해서는 움막을 생산한다. (…) 그것은 노동을 기계로 대치하지만 노동자 일부를 야만적인 노동에 빠뜨리며 다른 일부를 기계로 만든다."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 속에서 스스로를 긍정하지 않고 부정하며, 행복을 느끼지 않고 불행을 느끼며, 자유롭고 육체적이며 정신적인 에너지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육체를 소모시키고 그의 정신을 황폐화시킨다는 것. (…) 노동하지 않을 때에는 그의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고, 노동할 때에는 편안하지 않다. 그런 까닭에 그의 노동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강요된 강제노동이다."
자본주의가 계속되는 한 출간은 계속된다
마르크스가 <경제학 철학 수고>에서 폭로했던 자본주의 사회에서 세상살이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바로 <경제학 철학 수고>가 1987년에 이어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나온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마르크스의 방점 하나, 용어 하나 풀어쓰지 않는 번역을 한" 철학자 강유원은 이렇게 얘기한다.
"(이 책의) 적실성에 관해서는 의문이 있을 수 있겠다. 이에 대해서는 오늘날 우리의 핍진한 삶을 만들어내면서 동시에 그것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위력은 여전히 자본주의 체제라는 것, 그런 까닭에 우리는마르크스를 우리의 사회적 삶과 그것에 배태되어 영위되는 개인의 삶에 관한 통찰의 출발점으로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
이 책을 20년 만에 다시 펴낸 출판인 김태경은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우리는 대답한다. 수고가 쓰였던 1844년에도, 출간되었던 1932년에도, 그리고 한국에 번역되었던 1987년에도, 그리고 지금에도 인간 사회의 저 심연에 똬리 틀어 입 벌리고 있는 악의 본질이 존재하는 한, 그에 대항하기 위한 강력한 사유의 무기로서 <경제학 철학 수고>는 아직도 유효하며, 그 어둠 속에서 길 잃고 방황할 때 다시 돌아가 반성해 볼 수 있는 인간 존재의 집으로서 출간 가치는 충분할 것이라고.그리고 우리는 그런 책을 고전이라 부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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